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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똑똑 거기 누구 없소

 

 
입사 직후와 지금의 윤지 씨는 얼마나 성장한 것 같나요? 성장이 멈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만큼 성장한 것 같다. 많은 성장을 이룬 것 같다 중, 나는 중간이었다. 올해 우리 팀은 많은 프로젝트를 오픈했다. 한 일의 양은 많았는데, 그 정도의 성장이라면 그 효율이 좋지 않은 거였다.  왜 중간 정도의 성장 밖에 할 수 없었는지, 그 근거를 알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가 몸담았던 프로젝트와 그때 배운 것들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입사 후, 앱 중심이었던 구독 서비스를 웹 화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그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크고 굵은 프로젝트에 계속 참여하게 되었다. 속해있는 팀이 회원이나 상품, 결제 같은 비즈니스 기반 도메인을 담당하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앞으로 쭉 바쁠 일만 남아있다. 그래도 요즘엔 숨을 돌릴 틈이 조금 생겼다. 언제 다시 바빠질지 모르기 때문에 부지런히 그간 해왔던 프로젝트를 정리해두고 있다. 

 

정리할 때는 배운 내용을 지식화에 몰두하는 것이 아닌 체화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블로그를 다시 하게 된 이유다. 입사 후, 블로그를 끊었다. 의지 반, 타의 반이지만 전부터 블로그 포스팅이 내게 도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컸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전시화하는 것에 불과한 것 같은 느낌이 적지 않았고, 숙제를 치러내는 기분까지 들었다. 다른 개발자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지 이런 생각 때문이었겠지 뭐..😐 암튼 내게는 카프카 구축 방법 등의 --할 수 있는 방법 류의 메모나 정리는 노션이나 옵시디언이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블로그라는 매체는 정보도 정보지만, 거기에 무언가 더 가미되어야 할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정말 정보 만을 원하면 공식 문서나 잘 번역된 서적을 찾아보거나 코딩의 신 챗 GPT한테 물어보면 된다. 내 경험을 나의 언어로, 내가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남겨두자. 개발 방법론 같은 것들은 다른 블로그에 많이 있으니 나는 다른 종류의 것들을 남기고 싶었다. 그 매개로 블로그를 다시 이용해 보려고 한다.

 

요즘 한병철 철학자의 <서사의 위기>라는 책을 읽고 있다. 반은 못 알아듣고 있지만, 어쨌든 요지는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거였다. 저자가 정보는 순간적이고 이야기는 영원하다는 점을 지적했을 때 나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끄덕... 물론 레디스 구축할 때나 익숙하지 않은 코틀린 문법에 대해서 나도 구글링하고 한글로 예쁘게 잘 번역된 포스팅을 찾아 헤맨다. 이런 블로그들은 내게도 엄청 유용하고 없어서는 안되는 도구지만, 어차피 그런 건 잘나고 똑똑하신 분들이 잘 해놓을 테니까. 나는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글을 쓰고 싶다. 이야기는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고 그렇게 생긴 힘이 생명력이 길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첫 개발자로 근무했던 회사에서 작년 12월 퇴사했다. 한 달은 놀았고, 한 달은 취직 준비를 했다. 그렇게 퇴사 후 두 달 뒤인 올해 지금 회사에 입사했다. 구직활동 기간 동안 이력서를 넣은 곳은 두 군데였다. 한 곳은 내게 너무나 긍정적이었고, 한 곳은 꽤나 회의적이었다. 내가 입사하게 된 곳은 후자였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자면, 나는 이직 후 가면 증후군을 겪었다. *개발자들이 겪는 가면 증후군
 
어느 날은 이런 적이 있었다. 퇴근길이었다. 오르막을 영차영차 오르고 있는데, 몇 개월 전 면접에서 들은 말들을 상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들었던 나에 대한 평가를 나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극복하는 데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팀원들이었다. 다행히도 내 주변에 멋지고 훌륭한 개발자들이 많아서 남몰래 그들에게 많은 의지를 했다. 신기하게 그들이 보여주는 멋진 모습들을 보고 느끼고 맛보는(?) 것 자체로도 많은 의지가 됐다.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 닮아가자라고 결심했고 옆에서 많은 에너지를 얻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잘 모르는 기술이가 구현을 해야 할 때 두려운 감정이 많았다. "못하면 어쩌지?" 나는 컴퓨터 전공을 하지도 않았고, 그 근처에도 닿지 못할 전공을 했다. 그래서 나 혼자의 생각으로는 "나는 깊게 알지 못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많이 했었다. 근데 이제는 내가 깊어지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의 전환에는 계기가 있었다. 선임 급 팀원 분과 페어를 한 적이 있었다. 많은 기술을 알고 계시기로 백엔드 팀 내에서도 유명하신 분이었다. 어느 정도 였냐면 "아이폰은 어렵다고 투덜대면서, 스프링은 최신만 쓰는 사람"이라는 우스갯 말이 떠돌정도였다. 페어 내용은 어떤 API 결과를 redis 에 캐싱 해두는 작업과 그에 대한 통합 테스트였다.  선임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저도 redis 캐싱 테스트는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찾아봐야 해요. 근데 카프카 통합 테스트할 때 테스트 컨테이너 띄워놓은 적이 있어서 비슷하게 해보면 되지않을까요? " 그리고서는 공식 문서를 보시고 한 줄 두 줄 코드를 따라 해보시더니 테스트 환경을 구축하셨다. 나는 이걸 보고 내가 그동안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깊이의 선행조건은 넓이구나. 이것저것 두루두루 많은 경험을 해보아야 다른 것에도 깊어지는구나. 그러려면 내게 필요한 것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경험이구나. 무릎을 탁 쳤지..
 
요즘은 예전처럼 회사-집-회사-집만 하지 않고,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있다. 공부 외에 다른 것에 시간을 쓰는 것이 낭비가 아니라 비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에만 몰두하지 않고 내 취미생활을 아껴하는 것도 집중하고 있다. 덕분에 이번 3분기에 읽은 소설이 꽤 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이 진짜 많다.
 
가끔은 시간은 너무 빨라서 빠르다는 말조차 적절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가 살고 있는 규칙적이고 순차적인 시간과 완전히 다르거나 그러한 시간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다. 단 몇 분의 1초 사이에 지나가는 생각과 그에 따른 연상 작용을 말로 표현하려면 몇 배의 시간과 공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또 남긴다. 이야기를 많이 남겨서 시간을 초월해버려야지 .. ㅋㅋ